[신문] 첫 환자 떠난 뒤 “일도입혼”…‘난소암 킬러’ 되다
작성자
관리자작성일자
2023-05-18 00:00조회수
198
‘올해의 임상교수’. 장석준(54) 아주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실에는 이렇게 적힌 황금색 현판이 붙어 있다. 병원 관계자는 “진료·연구로 공을 세운 임상교수에게 주는 상장”이라며 “장 교수가 2016년 1회 수상자”라고 귀띔했다.
장 교수는 난소암 환자가 공유하는 명의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다. 3대 부인암 중 하나인 난소암은 ‘조용한 살인자(silent killer)’로 불린다. 난소가 몸속 깊숙이, 골반 옆에 있다 보니 초기 파악이 어려워 난소암 환자 80%는 다른 장기로 전이된 3, 4기에 발견된다. 치료도 까다로워 사망률이 높다. 장 교수는 이런 고약한 암과 싸운다.
난소암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재발이 잦아서다. 암이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5년 내 80%가 재발한다고 한다. 10년 지나 재발하는 사례도 있다. 3~4기 진단을 받고 “제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” 낙담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장 교수는 이런 격려의 말을 한다고 했다.
“교과서에 나와 있는 평균 생존율 이상 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드리겠습니다.”
수술 성적을 들여다보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. 장 교수를 거친 누적 500여 명의 5년 평균 생존율은 50%(3기), 29%(4기) 정도다.
미국에서 난소암 치료 성적이 제일 좋다고 알려진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경우 3기 말, 4기 난소암 환자의 5년, 10년 평균 생존율이 각각 46%, 22%다.
장 교수에게 비결을 묻자 “적극적으로 수술하는 것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. 표준 치료법은 ‘수술+항암’이다. 불행 중 다행으로 난소암은 10명 중 8명꼴로 약발(항암제)이 듣는다고 한다. 아무리 그래도 수술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.
장 교수는 “퍼스트 찬스가 베스트 찬스”라고 했다. “첫 수술에서 의사가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숨은 암덩어리를 꼼꼼히 떼느냐가 예후를 결정한다”면서다.
“약은 서울, 부산, 미국 전 세계 어디 의사가 쓰나 똑같아요. 수술은 서전(외과의)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. 같은 수술이지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게 이 병이에요. 이 사람은 이만큼 떼었는데 깨끗하다고 해도 저 사람은 아닐 수 있거든요.
수술은 짧게 잡아도 3~4시간 걸린다. 오전 8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2시까지, 최장 18시간까지 해 본 적도 있다.
5평 남짓한 연구실엔 ‘한 번의 수술에 영혼을 담는다’는 뜻의 ‘일도입혼(一刀入魂)’이 쓰인 족자가 있다. 장 교수는 “환자 남편이 직접 써준 거다. 보호자였던 그분은 희귀암으로 돌아가셨고, 난소암 4기였던 부인은 2016년 수술한 뒤 건강히 계신다”고 했다.
그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. 수십 년 흘러도 잊히지 않을 환자다. 2006년 3월 조교수로 처음 수술한 난소암 3기 환자, 배운 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환자는 1년 뒤 재발했고, 사망했다. 장 교수는 이후로 메스를 잡지 않았다. “쪽팔리고 미안해서”라고 했다.
책을 수십 권 보고 저널을 수백 편 복사해 독학에 들어갔다. 복막암 수술의 대가인 미국 워싱턴암센터의 슈거베이커 수술 동영상을 보며 시뮬레이션했다. 워크숍과 세미나도 빼놓지 않았다.
1년이 훌쩍 지난 2008년, “이 정도면 환자에게 안 미안할 것 같다”는 느낌이 들면서 다시 메스를 잡았다. 장 교수는 “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안 할 것”이라며 “환자에게 그 순간 진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도 미안하다”고 말한다.
이런 이유에서일까. 그가 보는 명의는 “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을 때 환자에게 미안하지 않은 의사”라고 한다. 장 교수는 “상을 많이 받는 것보다 환자에게 인정받는 게 더 행복하다”며 환자와 주변 사람들에게서 “장석준 교수와 같은 시대에 살아 다행이다”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.